목차 1.한국/중국 술의 기원
2.한국/중국 술의 분류
3.한국/중국의 명주
4.한국/중국의 술 문화
5.한국/중국의 술 관련 축제
6.결론
본문 <한국 술의 기원>
우리나라 술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동명왕 신화다. 「제왕운기」에 의하면 주몽의 아버지 해모수는 물을 맡은 신인 하백의 세 딸을 초대하여 술을 취하도록 마시게 하니 그녀들이 놀라 달아나는 가운데 큰딸 유화가 해모수에 잡혀 그날 밤 해모수와 잠자리를 같이하게 되었다. 술에 얽힌 하룻밤의 인연으로 유화가 잉태하여 낳은 아이가 바로 주몽인 것이다.또 「조선주조사」에 보면 중국 우왕 때 제후를 모아다 도산회를 개최하였는데, 이 때 단군의 자손들이 참석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신화시대부터 술에 관한 역사가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삼국시대에는 한해의 풍성한 수확과 복을 기원하며 맑은 곡주를 빚어 조상께 먼저 바치고 춤과 노래와 술 마시기를 즐겼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 보아 우리나라에서는 농사를 시작하였을 때부터 술을 빚어 마셨으며 모든 행사에서 술이 애용된 것을 알 수 있다. 옛날부터 “한 고을의 정치는 술에서 보고, 한 집안의 일은 양념맛에서 본다”는 말이 있었던 것으로 보면, 술맛이 좋으면 종교나 정치의 일은 바로 알 수 있다는 옛 선인들의 생활을 짐작 할 수 있다. 고려시대에는 송원대의 양조법이 도입되었으며 주품도 다양해졌다. 「고려사」에 의하면 고려 문종 때 왕이 마시는 술은 양온서를 두어 빚었는데 청주와 법주 두 가지로 구분되어 질 항아리에 넣고 명주로 봉하여 저장해 두었다. 이 시기에는 사찰이 여행자의 숙박지로 이용되었을 뿐만 아니라 술을 판매하는 풍속이 있어 사찰을 중심으로 다양한 술들이 발달되었다. 그러나 현종때에는 그 폐단이 심해 술을 빚고 마시는 것을 금하게 되었다. 고려후기에 접어들면서 증류주 문화가 유입되었는데 이는 몽고의 침입으로 소주 고리의 이용방법이 도입되면서 급속하게 발전하였다. 조선시대의 술은 고급화 추세를 보여 제조 원료도 멥쌀 위주에서 찹쌀로 바뀌고 발효기술도 바뀌어 양보다는 질 좋은 술들이 제조되었다. 조선후기로 접어들면서 지방주가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다. 이 때 명주로는 서울의 약산춘, 여산의 호산춘, 충천의 노산춘등이 유명하였다. 이 밖에 약주의 산패 방지를 목적으로 양조주와 증류주를 혼합한 혼성 주인 과하주등이 여름에도 마실 수 있는 술로 개발되었다.
본문내용 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동명왕 신화다. 「제왕운기」에 의하면 주몽의 아버지 해모수는 물을 맡은 신인 하백의 세 딸을 초대하여 술을 취하도록 마시게 하니 그녀들이 놀라 달아나는 가운데 큰딸 유화가 해모수에 잡혀 그날 밤 해모수와 잠자리를 같이하게 되었다. 술에 얽힌 하룻밤의 인연으로 유화가 잉태하여 낳은 아이가 바로 주몽인 것이다. 또 「조선주조사」에 보면 중국 우왕 때 제후를 모아다 도산회를 개최하였는데, 이 때 단군의 자손들이 참석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신화시대부터 술에 관한 역사가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삼국시대에는 한해의 풍성한 수확과 복을 기원하며 맑은 곡주를 빚어 조상께 먼저 바치고 춤과 노래와 술 마시기를 즐겼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 보아 우리나라에서는 농사를 시작하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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