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7월 18일 금요일

안익태의 애국과 정체성 고찰

안익태의 애국과 정체성 고찰
안익태의 애국과 정체성 고찰.hwp


목차
Ⅰ. 들어가며
Ⅱ. 안익태와 애국가
1. 안익태의 생애
2. 안익태를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
1) 민족주의
2) 반민족주의
3. 안익태의 애국가
1)애국가의 구성과 역사성
2)애국가의 정통성 -정읍사, 아리랑
3)불가리아 민요를 모방하지 않았다
Ⅲ. 결론
참고문헌



본문
Ⅰ. 들어가며
2009년 11월 8일, 약 15년에 걸친 ‘친일인명사전’ 편찬이 마무리되고 ‘친일인명사전’은 세간에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고, 이곳엔 우리나라 국가를 작곡한 안익태의 이름도 기제 되었다. 이유인 즉, 안익태는 1938년 일본 왕 즉위식 때 축하작품으로 사용되던 일본의 관현악 에텐라쿠를 그대로 차용하여 <관현악을 위한 환상곡 ─ 에텐라쿠>를 발표했으며, 1942년 만주국 건국 10주년 경축 기념식에서 <만주환상곡>을 작곡해 기념음악회를 지휘한 것을 이유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되었다. 안익태의 이러한 작품 활동으로 인해 안익태에 대한 후대사람들의 평가는 극명하게 갈리고 있다. 식민지배하라는 매우 특수한 상황에서 식민현실과 애국이라는 민족성 사이에서 일어나게 되는 선택의 차이를 인정해야하는가 인정한다면 어느 정도의 범위까지 인정해야 하는가에 대한 개개인의 생각 차이는 안익태와 애국가에 대한 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행하는 대부분의 공식행사 전에는 국기에 대한 경례와 애국가 제창을 한다. 하지만 최근 특정정당의 창당대회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는 하되, 애국가 제창은 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애국가를 작곡한 안익태가 친일인명사전에 등록된 친일음악가이기 때문이라는 이유에 따른 행동이었다. 이는 비단 특정 정당의 사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친일인사가 작곡한 애국가를 공식석상에서 지휘 할 수 없다며, 지휘를 거부해 징계에 오른 한 중학교 교사도 있으며, 비록 소수이긴 하지만 안익태가 작곡한 ‘애국가’가 아닌 우리 민족 고유의 음악 ‘아리랑’을 국가로 지정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이와는 반대로 우리나라의 국가는 법이 정한 것이 아니라 민중에 의해 불렸으며, 대한의 오랜 역사와 함께 역사를 담은 국가인데 작곡가가 일부 친일을 한 행적이 있다고 해서 역사가 담긴 애국가를 폐지하자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라는 의견도 있다.
나라를 대표ㆍ상징하는 노래이자 그 나라의 이상이나 영예를 나타내며 주로 공식행사 전에 연주ㆍ제창되는 ‘국가’가 끊임없이 뜨거운 감자처럼 논란에 휩싸이고 있다. 이는 국가를 작곡한 안익태라는 인물을 기반으로 펼쳐지고 있는 논란이라는 점을 감안해 볼 때, 안익태가 행했던 과거의 행동들이 어떤 이유로 친일이라는 평가를 받는지 조사하고 그 반대의 입장에서 주장하는 내용들에 대해서도 살펴보려 한다. 또한 식민지상황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의 개인이 선택한 행동과 민족성과의 상관관계를 모색해 ‘애국과 친일사이’라는 양날의 검에 서 있는 인물인 안익태를 애국가에 초점을 맞춰 재조명해 보려 한다.



본문내용
민족주의
2) 반민족주의
3. 안익태의 애국가
1)애국가의 구성과 역사성
2)애국가의 정통성 -정읍사, 아리랑
3)불가리아 민요를 모방하지 않았다
Ⅲ. 결론
참고문헌
Ⅰ. 들어가며
2009년 11월 8일, 약 15년에 걸친 ‘친일인명사전’ 편찬이 마무리되고 ‘친일인명사전’은 세간에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고, 이곳엔 우리나라 국가를 작곡한 안익태의 이름도 기제 되었다. ‘친일인명사전’ 시사상직사전,pmg 지식엔진연구소 2012, 박문각
이유인 즉, 안익태는 1938년 일본 왕 즉위식 때 축하작품으로 사용되던 일본의 관현악 에텐라쿠를 그대로 차용하여 <관현악을 위한 환상곡 ─ 에텐라쿠>를 발표했으며, 1942년 만주국 건국 10주년 경축 기념식에서 <만주환상곡>을 작곡해 기념음악회를 지휘한 것을

참고문헌
‘친일인명사전’ 시사상직사전,pmg 지식엔진연구소 2012, 박문각
진정임, 『안익태』, 시공사, 2001, p9-11
모우리, 『Dear,friend』,1919. 3. 7
첼리스트 안익태 씨 차제 구주에 연주행각, 『조선일보』, 1937. 8. 7
안익태, 서양 음악에 대하야-음악공부를 희망하는 니에게 (하), 『동아일보』1934. 4. 19, 6면 1단
대담-안익태 씨와의 인터뷰, 『세계일보』, 1960. 3. 13
안익태 기념음악회 팜플렛, 2010. 9. 1
안익태기념재단
노동은, 『서울대저널』
서규환, 『안익태의 애국가는 국가일 수 없다』, 인천in 칼럼
월간음악 1980. 3
대한인국민회는 1912년 11월 샌프란시코에서 국외 한인사회 통합을 목표로 결성, 중앙총회를 최고기관으로 하여 독립운동 지원과 교민 지위향상을 꾀한 단체이다.
웨스트민스터 콰이어 칼리지 음악과에 유학하고 있던 박태준(朴泰俊 1900~1986)의 회고
김연갑,노동은교수의<애국가>개정론에대한반론,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arirangyes&logNo=130030899514&redirect=Dlog&widgetTypeCall=true
진환주, 『안익태의 음악세계에 대한 연구,2011.11 ,pp.137-pp.148
안익태 기념음악회 팜플렛, 2010. 9. 1
에르네스트 르낭, ‘민족이란 무엇인가’ 신행선 옮김, 책세상, 2002, p.80

악보
애국가
http://blog.naver.com/gemkky?Redirect=Log&logNo=100011902646
올드 랭 사인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san_glow&logNo=40161968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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