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R E P O R T 상수도 공학 상수도의 역사 & 한국의 상수도 발전 역사 상수도의 역사 수도는 기원전부터 존재해왔으나 체계적인 시스템으로 기능을 발휘한 것은로마 제국에 들어와서부터이다. 그러나 로마 제국 내의 도시에 설치된 수도시설도 제국이 쇠미해짐에 따라 보수와 준설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아 3세기말에는 옛날같이 기능하지 않게 되었다. 그결과 일부의 수도가 중세를 통하여 근근이 이용되는 것에 불과했다. 중세의 취락은 일반적으로 규모가 작았으므로 음료수를 시내의 샘이나 우물에서 길어다 마셨는데 성벽 안에 고밀도로 거주한 도시에서는 물 부족과 배설물 처리가 심각한 위생문제였다. 13세기에 들어와 파리 런던 교외 구릉지의 용천(湧泉)에서 시의 성곽 안까지 도수(導水)하는 매우 소규모의 수도가 만들어졌지만, 대부분의 시민은 물장사가 운반해온 강물을 사는 수밖에 없었다. 나쁜 물이 질병을 가져온다는 것은 기원전부터 알려져 있었는데, 고대 이집트인은 물을 햇빛과 공기에 접촉시킨 후 침전시켜 헝겊이나 모래로 여과하는 법, 또 물을 끓임으로써 물이 정화된다는 것 등을 이미 알고 있었다. 15세기 이후에 와서 모래와 목탄을 번 갈아 층층이 충전한 여과 탱크가 고안되기는 했지만 개인저택과 물 판매업자가 사용하는 데 지나지 않았다. 중세 말기부터 유럽 대륙의 하천변과 하구부의 교통 수송의 요지에 도시가 번창하게 되었는데, 이들 도시에서는 배의 항로인 하천의 물이 오염될 것을 경계하여, 음료수원으로 주로 지하수와 주변고지의 샘물을 끌어다 썼다. 이런 생각은 라인 강 연변의 도시 등 유럽 각지에 지금도 계승되고 있다. 이에 비해 16세기에 들어와 인구가 급증한런던과파리에서는 양질의 샘물이 크게 부족해지자, 부득이 템스 강과 센 강의 물을 수차로 대량 양수해 공급하는 수도가 런던에서는 1581년에, 파리에서는 1608년에 설치되었다. 이것으로 도시생활의 불편함과 불결함이 상당히 개선되었으나 직접 마실 수 있는 물은 아니었다. 그후 수십km 떨어져 있는 곳의 샘에서 물을 끌어오는 공사에 성공한 회사가 나타났다. 런던 시내에는 비싸지만 양질의 물을 공급하는 3개의 회사와 템스 강에서 값이 싸고 풍부한 저질의 물을 공급하는 5개의 회사가 지역에 따라 병존했다. 1830년대부터 콜레라가 빈번히 유행했다. 1850년경부터 콜레라는 오염된 음용수에 의해 감염된다는 것, 강물이라도 여과된 물을 공급받는 지역에서는 환자수와 사망자수가 모두 낮다는 것이 경험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1852년 런던에서는 수도수도법(首都水道法)이 공포되었다. 그 요점은 템스 강에서의 취수는 런던에서 30km 이상 떨어져 있는 상류에 한하며, 하천수는 여과한 후에 공급해야 하고, 5년 이내에 상시급수를 달성해야 한다는 것이었지만, 시내의 수도가 실질적으로 이 법률과 같이 된 것은 1870년 이후였다. 한편 파리에서는 나폴 레옹 1세 때 센 강의 오염하수에 의존하지 않아도 되도록 103km나 떨어져 있는 우르크 강으로부터의 도수로를 완성했으나(1811), 수원하천과 도수 도중에서의 오염이 심해서 잡용으로밖에 쓸 수 없었다. 이에 따라 더욱 양질의 수원을 찾아내다가 1865년에 130km 떨어져 있는 용천에서 도수해 직접 음용할 수 있는 수도를 완성했다. 하고 싶은 말 좀 더 업그레이드하여 자료를 보완하여, 과제물을 꼼꼼하게 정성을 들어 작성했습니다. 위 자료 요약정리 잘되어 있으니 잘 참고하시어 학업에 나날이 발전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 구입자 분의 앞날에 항상 무궁한 발전과 행복과 행운이 깃들기를 홧팅 키워드 역사, 런던, 중세, 용천, 세기, 양질 |
2019년 3월 22일 금요일
상수도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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