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영상역사를 통해 역사보기와 영화읽기 - Kingdom of heaven을 보고. > "십자군 전쟁은 교회의 판단 미스로 인해 일어난 사건이야, 하지만 당시의 시대상에서 하나님과 교회의 말은 진리였고, 백성들부터 시작해서 온 유럽이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자행했던 사건임은 분명해." 평소 기독교에 조예가 깊은 친구의 한 마디였다. 그를 비롯, 나와 내 친구들은 술자리에서건 온라인에서건 종교 이야기를 즐겨한다. 아쉽게도 그 친구는 어머니의 뱃속에서부터 예수님을 믿어온 '모태신앙'을 가진 자이기에 무신론적 관점을 가지고, 기독교의 만행을 싫어하는 우리에게 토론을 할 때 항상 공격을 당하고 배척받기 일쑤였다. 이 친구의 고집 또한 만만치 않기에 자기의 주장을 굽히지 않으며 꿋꿋이 버틴다. 그런 친구를 보며 과연 십자군 전쟁은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이 생각하는 보편적인 개념과 일치하는지, 아니면 역사가 말하는 신의 미명하에 자행된 상상하기조차 끔찍한 사건이었는지 궁금증이 들었다. 마침 과제물 안내 계획서를 보다가 '킹덤 오브 헤븐' 이라는 영화제목이 보였다. 수업시간 때 십자군 전쟁을 수업하면서 시청각 자료로 보게 된 영화의 장면이 떠올랐다. 비록 짧게 보았지만 그 기억이 남아있다. '나중에 과제를 할 때 저 영화를 시청 해야겠다.'라는 생각이 다시금 내 머릿속에 들었다. 나는 주저하지 않고 이번 감상문의 대상을 '킹덤 오브 헤븐'으로 결정하고 인터넷을 실행했다. 그런데 영화를 구하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다른 목록에 적혀있는 영화들에 비해 비교적 최신작이라 생각해서 쉽게 구해질 것 같았지만 웹하드에는 물론이고 유료영화를 상영하는 사이트에 조차 자료가 없었다. 그렇게 2시간이 지났을까, 속도가 느린 토렌트 파일을 입수하여 우여곡절 끝에 자료를 다운받게 되었다. 러닝타임이 3시간이라는 어마어마한 스케일에 보기 전부터 한숨이 밀려왔다. 괜히 감독판을 받은 것이 후회된다는 생각도 들었다. (감독판은 극장용에 비해 +49분 더 러닝타임이 추가됨.) 이 영화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면서 '이 영화는 어두운 밤에 조용히 볼 때가 제 맛'이라는 어느 블로거의 조언에 따라 밤 12시에 영화를 시청하기로 하였다. 영화는 담담한 문체의 프롤로그를 시작으로 1184년 프랑스의 겨울을 나타낸다. 영화는 결말 부분까지 시종일관 어둡고 음습한 날씨와 배경을 그린다. 이를테면 눈, 사막, 어두운 성 내부 등등이 그것인데 중세시대와 십자군 전쟁으로 인한 시대의 암흑기를 어두운 배경을 묘사하는 표현을 느낄 수 있다. 이러한 배경을 바탕으로 영화 초반부에는 전체적인 어두인 이미지를 떨칠 수 없으며 개인적으로 초반부 등장인물들의 관계도를 이해하는데 힘든 영화였다.- 초반 '이벨린'의 영주 '고프리'가 헐리웃 배우 '리암 니슨' 인 것에 놀랐다, '리암 니슨'은 내가 가장 좋아하고, 또한 내가 알고 있는 몇몇 배우들 중 하나이다.- 그는 대장장이인 '발리안'에게 찾아가 십자군 전쟁에 참가하서 가족의 죄를 씻자고 설득하지만 '발리안'은 거절한다. '고프리' 경이 돌아가고 난 후 발리안은 자신의 아내의 목걸이를 차고 아내를 모욕하는 사제를 이제 막 담군 칼로 찌른 후 뜨거운 용광로에 던진다. 씻을 수 없는 죄를 저지른 '발리안', 그는 자신의 죄를 사하기보다 자살로 생을 마감한 아내를 구원하기 위해 한밤중, 자신의 대장간에 불을 지르고 '고프리' 경을 찾아 나선다. 역사에서 말하는 일반 서민들의 '십자군 전쟁'의 참여 명분을 표현한 장면이다. 당시 교회는 상인들과 기사들에게는 각각 토지의 획득과 동방무역로 확보, 농민과 천민들에겐 하나님께서 너희의 죄를 사하여 주시고 천국에 간다는, 이른바 '면죄'와 본인들 스스로의 중세 봉건사회의 중압감에서의 해방이었다. http://shindoli.blog.me/20163425476, 박주란의 세계사, EBS 수능 5분 사탐. (간접 인용) 역사적 사실과 정확히 일치하는 부분이다. '고프리' 경을 찾아간 '발리안'은 그에게 검술을 배우며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고된 길을 걷는다. 그러던 와중, 사제를 살해한 '발리안'을 잡으러 온 세력들과 교전을 벌이던 중 '고프리' 경은 적의 화살을 맞고 중태에 빠진다. '발리언'은 그를 헌신으로 간호하며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항구 '메시나'에 도착한다. 메시나의 입구에서 어느 병사는 "이교도를 학살하는 것은 죄가 아닙니다, 천국으로 향하는 길입니다." 라는 소리를 계속 외쳐 된다. 당시 십자군전쟁에 참여한 사람들의 인식을 파악할 수 있는 대사이다. 또한 영화에서 '메시나'는 엄청나게 많은 인파들과 배를 그려내고 있는데 성지순례를 떠나는 당시의 사람들도 매우 자세히 그려내고 있다. 결국 '고프리' 경은 예루살렘에 도달하지 못한 채 자신의 아들인 '발리안'에게 '이벨린'의 영주 작위를 물려주며 "적 앞에서 결코 두려워 말라, 늘 용기 있게 선을 행하라. 생명을 걸고 진실만을 말하며 약자를 보호하고 의를 행하라, 그게 네 소명이다." 라는 명대사를 남기며 죽음을 맞이한다. 후에 이 대사는 다시 '발리언'이 어느 사제의 종에게 다시 들려준다. 마지막 '살라딘'과의 결전을 앞둔 상태에서 예루살렘을 지킬 병력이 없어 당황하고 두려워하는 사제의 종과 근처에 모인 시민들에게 전투 참여를 독려하는 장면이다. 이 영화에서 가장 핵심적인 대사이자 주제가 아닐까 싶다. 한낱 대장장이에서 아버지를 통해 성지를 지키기 적격인 기사로 태어난 발리안, 발리안에게 있어 예루살렘이란, 그저 단순한 도시가 아니었다. 성지 안에 있는 백성들을 구제하고 살리는 일은 그에게 있어 매우 의미 있는 일이었고, 신은 성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신에 대한 믿음을 품고 자신의 가슴 속에 있다는 것을 점점 느끼게 된 것이다. 다시 돌아와서, 아버지의 유지를 받들어 천신만고 끝에 예루살렘에 도착한 '발리언'은 예수의 무덤, 처형당한 장소 등등을 돌아다니지만 신을 찾지만 '신이시여, 저에게 무엇을 원하나이까?' 라는 독백을 하며 방황하기만 한다. 그러다가 '기프루지앵'의 아내 '시빌라' 공주를 만나며 불완전한 사랑을 나누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니고 예루살렘에서 그는 자신의 생각에 큰 영향을 끼치는 한 사람을 만나는데 그는 바로 자신의 군주 '볼드윈 4세'를 만나게 된다. 여느 기독교계 사람들과는 다르게 '볼드윈 4세'는 모두가 행복하고 평화를 누릴 수 있는 사회를 생각하는 것을 보고 '발리언'은 큰 감동을 받는다. 이교도의 군대는 모두 쳐서 죽여야 한다는 강경파 장군 '기프루지앵'과는 매우 다른 발상에 감동을 받은 '발리언'은 자신의 영지 '이벨린'으로 돌아와 아버지와 군주의 뜻을 받들어 백성들을 평화롭게 살기 위해 그의 부하들과 모든 노력을 쏟아 붓는다. 이 장면에서도 중세 봉건 사회의 제도인 주종제를 정확히 잡아 낼 수 있다. 영주는 주군에게 충성하고 군사적 봉사, 조언등을 해주고 주군은 영주를 보호하고 부양한다. 또한 영주가 죽으면 그의 아들이나 신뢰하는 사람에게 그 자리를 내줌으로서 특징 중 하나인 세습제도 확인할 수 있다. 상명대학교 E-Class 문화로 보는 세계사 강의안 4 - 서양 중세사회의 형성과 변화. (간접 인용) 하지만 '볼드윈 4세'와 '발리안'의 뜻과는 다르게 십자군의 강경파 장군 '레이놀드'가 이슬람의 카라반을 습격하며 전운의 기운은 감돌기만 하고, 예루살렘에서는 연일 '살라딘'과 전쟁을 벌이자는 강경파들의 목소리로 시끄럽기만 하다. 십자군은 살라딘의 군대와 '레이놀드'의 영지 '케락'에서 부딪히기 직전까지 갔지만 '볼드윈 4세'의 협상제의로 간신히 전쟁을 피하게 된다. '볼드윈 4세'는 '레이놀드'를 심하게 질책하며 일을 마무리 짓는다. 두 세력에게 잠시나마 평화가 찾아온 듯 하였지만 '볼드윈 4세'의 서거와 '시빌라'의 어린 조카의 왕위 계승, 조카 사망 후'기프루지앵'의 집권으로 또 다시 기독교와 이슬람의 갈등이 고조된다. 이 와중에 십자군은 다시 이슬람 지역을 습격하여 '살라딘'의 누이를 사살한 후 시신을 돌려달라는 '살라딘'의 사신의 목을 베어버림으로써 다시 한번 전쟁의 긴장감은 높아지기만 한다. 출정을 앞두고 '기프루지앵'과 그의 부하들이 회의를 하는 탁자에서, 전장터로 떠날 때 물이 없으면 모두가 전멸당하고 예루살렘마저 위험해진다는 '발리안'의 충고를 무시한 '기프루지앵'은 이윽고 주력군을 데리고 출전을 하였다. 이윽고 '살라딘'의 군대와 전투가 벌어지지만 오랜 행군과 물 부족으로 지쳐버린 십자군은 용맹한 이슬람 군대에 결국 처참히 패배하고 예루살렘마저 위협받게 된다. 기세를 올린 '살라딘'의 군대는 예루살렘을 정복하기 위해 대군을 이끌고 '발리안'의 군대와 대치하며 일진일퇴의 공방을 벌인다. 하지만 중과부적으로 많은 수를 이겨내지 못하고 더 이상의 피해가 있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 '발리안'은 결국 살라딘에게 휴전을 제의하고 모든 사람들을 기독교계 지역으로 돌려보내준다는 전제하에 예루살렘을 내주게 된다. '발리안'은 그가 사랑하는 '시빌리' 공주와 자신이 머물렀던 대장간으로 찾아가고, 훗날 다시 3차 십자군 전쟁을 일으키는 영국의 왕 '리처드'에 '나는 대장장이' 라고 말하며 그를 돌려 보낸다. 마지막으로 '발리안'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대장간 옆 꽃망울이 피는 나무를 만진다. 꽃망울이 송글송글 열려있는 이 장면은 아마도 전쟁이 끝난 후 평화가 찾아오고 있음을 암시하지만 결코 쉽지많은 않을 것이라는 영감을 받았다. 어찌되었건 자신의 옛 대장간을 둘러본 발리안과 시빌라는 오솔길을 떠나며 이 영화는 막을 내리게 된다. 3시간의 지루한 러닝타임을 이겨내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것을 보면서 나는 많은, 아니 혼란스러운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 영화는 단순히 중세시대의 사회를 그리고 화려한 액션, 웅장한 전투 장면, 품격 높은 컴퓨터 그래픽을 나타내는 영화는 절대 아니다. 영화 마지막, 발리언과 살라딘의 화해 장면에서 "예루살렘이란 도대체 무엇일까요?" 라는 발리언의 질문에 살라딘은 "아무것도 아니야, 하지만 모든 것이기도 하지" 라는 장면이 있다. 2백 년 가깝게 지속되었다는 점에서는 역사상 최장의 전쟁이었던 십자군 전쟁은 또한 온갖 복잡성과 모순을 띠고 있어, 하나의 '전쟁'이라고 이해하기 어렵기도 하다. 한편으로 그것은 로마 말기의 유럽에 하고 싶은 말 좀 더 업그레이드하여 자료를 보완하여, 과제물을 꼼꼼하게 정성을 들어 작성했습니다. 위 자료 요약정리 잘되어 있으니 잘 참고하시어 학업에 나날이 발전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 구입자 분의 앞날에 항상 무궁한 발전과 행복과 행운이 깃들기를 홧팅 키워드 발리안, 살라딘, 십자군, 십자, 발리언, 볼드윈 |
2019년 3월 22일 금요일
상명대 서양문화의 이해 레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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