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3월 10일 일요일

연대원주 영화의이해 레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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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찰리 채플린 감독이 <모던 타임즈>를 통해 말 하려 던 건 무엇이었을까?
이것은 미국의 급속한 산업화에 따른 자본주의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일까? 아니면 단순히 영화를 보는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 만든 영화일까?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를 보면 찰리 채플린의 웃긴 마임 연기 속에 그 시대적 의미가 적절히 드러나 있다. 이것은 영화 중간 중간 확인 할 수 있는데, 잠시도 쉴 틈 없는 공장 상황은 나사를 조이는 찰리 채플린의 얼굴에 벌레가 날아들어 손을 쓰지 못하고 얼굴로 벌레는 쫓아 내려하다가 벌레가 도망가지 않아서 잠깐 손을 사용하여 작업의 흐름을 놓치는 장면에서 잘 표현 되었고, 잠깐의 시간낭비도 허용하지 않는 공장 상황을 보여주기 위해 음식을 먹여주는 기계가 나오는 것과 잠시 담배를 피러 화장실을 간 찰리 채플린을 발견한 사장이 따끔하게 한마디 하는 장면에서 볼 수 있다. 또한, 음식을 먹여주는 기계를 시연해 볼 때, 기계가 고장을 일으키며 음식을 옷에 쏟아버리고 엉뚱한 음식을 먹여주고 입을 닦는 기계가 찰리 채플린의 얼굴을 계속 치는 장면들은 급속한 산업화 발전에 따른 부작용 즉, 기계가 항상 효율적인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내포하고 있다. 또, 찰리 채플린이 나사 조이는 일을 반복하면서 몸에 습관이 배어 작업을 하지 않을 때도 나사를 조이는 듯한 행동을 보이는 것과 다른 노동자의 코를 나사를 조이듯 조이는 행동들은 그 당시 노동자들이 똑같은 작업들을 몸에 배일 정도로 얼마나 오랜 시간 지속해 왔는지 알 수 있다. 또, 찰리 채플린이 정신병원에서 나온 뒤 트럭에서 떨어진 깃발 하나를 들고 차를 따라가자 시위대의 행렬이 나타나 찰리 채플린이 시위의 주동자가 되는 부분에서 파업의 현장을 나타내었고, 사장이 감시 카메라로 직원들을 감시하며 놀고 있는 직원이 있으면 곧바로 화면을 연결해 따끔하게 한마디 하는 장면에서 그 당시 시대적 상황이 얼마나 각박했는지 알 수 있다. 잠깐의 담배 피는 시간도 용납하지 않는 시대적 상황은 대규모 파업이 일어나기에 적절한 상황이라고 판단된다. 그러나 자본가들은 더욱 값싼 노동자들을 공장에 투입 시킴으로써 파업을 해도 나아지는게 없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따라서 국민의 1%가 전체 소득의 8분의 7을 차지할 정도로 극심한 빈부격차에 시달린다.
앞서 말한 내용들을 종합하면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는 미국의 급속한 산업화에 따른 자본주의에 문제를 제기하는 영화로 볼 수 있다. 하지만 관객들에게 웃음을 주려고 만든 영화라는 생각은 아직 저버릴 수 없다. 왜냐하면 앞서 말한 장면들이 모두 웃음을 가미한 장면이기 때문이다. 찰리 채플린이 어렸을 때부터 배워왔던 특유의 마임 연기로 무거운 듯 한 내용의 장면을 소화하니 관객들은 무성영화이지만 현실의 무거운 갑옷을 재미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모던 타임즈>에서 느꼈던 풍자들은 이 영화에서만 느낄 수 있을까? 아니다. 찰리 채플린은 <위대한 독재자>, <살인광 시대> 등 자신의 코미디 재능을 정치적 비판에 널리 사용하였다. 그 중 하나가 <위대한 독재자> 라는 영화인데, 이 영화는 2차 세계대전의 분위기가 만들어 지던 때에 히틀러와 무솔리니를 저격하여 풍자한 영화이다.
이 영화가 <모던 타임즈>와 다른 점이 있다면 <모던 타임즈> 는 그 시대적 상황과 분위기를 비판 하였다면, <위대한 독재자> 는 풍자의 주제가 좀 더 명확해진 즉, 히틀러와 무솔리니를 정면으로 풍자했다는 것이다. 찰리 채플린의 이러한 블랙코미디 미국의 분위기를 충분히 흔들 수 있었고, 그를 우려하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이러한 정치영화들의 무거운 주제들을 다룰 때 찰리 채플린은 항상 웃음을 첨가했기 때문에 찰리 채플린이 영화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 관객들에게 충분히 잘 흡수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러한 찰리 채플린 자신이 생각하는 이데올로기를 관객들은 무비판적으로 수용했을까? 여기에 관객들은 여러 가지 분류로 나뉠 수 있다. <위대한 독재자>를 예로 들어 말하자면, 나치를 존경하고 따르는 관객들은 이 영화를 접했다면 영화 중간에 욕을 하며 끝까지 보지 못하고 나왔을 것이다. 히틀러를 웃음거리로 만들고 그 안에 나치를 비판하는 내용을 담고 있으니 끝까지 영화를 볼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이에 반하는 생각을 가진 관객들은 이 영화를 보고 찰리 채플린을 옹호하고 어쩌면 이 영화는 명작이라며 주위에 말하고 다닐지도 모른다. 이에 따라 그 시절 관객들은 이 영화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히틀러 또한 찰리 채플린이 제작한 <위대한 독재자> 영화를 몰래 본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에 대한 감상평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은 이 영화를 보고 비평을 했더라면 히틀러 자신이 우스꽝스럽게 표현된 이 영화를 인정하는 꼴이 되 버리니 말이다. 또한, <모던 타임즈> 전에 제작된 르네 클레르 감독의 <우리에게 자유를> 이라는 영화를 본다면 모든 사람들이 그 시대적 상황을 비판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영화는 기계적인 사회를 예찬하는 영화로 산업화된 사회에 물들어간 사회를 보면서, 진정한 행복의 의미를 찾는 것이다. 또, 산업사회, 기계문명을 찬미하며 자동화 시스템과 대량생산체제를 굉장히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이 두 영화는 같은 주제에 대하여 이야기 하고 있지만 그 주제를 보는 시작은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그 시대적 상황이 동일 한 것에 있어서 찰리 채플린과 르네 클레르 감독이 서로 시대적 상황을 다르게 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두 영화가 아예 다르다고 할 수는 없다. 이 두 영화의 공통점은 주제의 전달을 코미디 요소를 적용해 관객들이 쉽고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제작 했다는 점에서 같다고 할 수 있다. 이에 관객들은 무비판적으로 영화의 내용을 수용하지 않고 각자의 주관에 맞게끔 영화를 수용하는 것이다. 두 가지 다른 주제의 영화를 무비판적으로 수용 했다면 아마 관객들은 뒤늦게 나온 <모던 타임즈> 라는 영화의 평을 나쁘게 내렸을 것이다. 허나 이것이 아니기에 그 시절 관객들은 무비판적 수용이 아닌 자신의 주관에 맞게 영화를 해석해 나갔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모던 타임즈> 라는 영화가 완벽히 잘 만들어진 영화라는 건 아니다. 관객들이 무비판적으로 영화를 받아들인 다는 것 과 영화의 완벽성은 다르기 때문이다.
<모던 타임즈>를 보다보면 두 개의 시간이 따로 진행되다가 하나의 시간으로 겹쳐지는데 이 것이 고아가된 소녀와 찰리 채플린의 시간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다. 처음에 이 두 장면이 의미하는바가 무엇인지 잘 인식되지 않는다. 단순히 한 소녀의 삶과 찰리 채플린의 삶을 동시에 나타내는 정도? 라고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이는 영화 초반부에 찰리 채플린과 소녀에 대한 연개성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찰리 채플린이 공장에서 이리저리 사고를 치고 다니는 와중에 소녀는 도둑질로 먹을 것을 구하고 다니며 동생들과 아버지를 먹여 살리고 있다. 아버지는 생활에 도움이 되지 않는 알콜 중독자로 딸이 훔쳐온 음식들을 같이 먹는다. 이러한 장면들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 단순히 불쌍한 소녀를 나타내려고 만든 장면일까? 이 장면을 다른 장면으로 바꿨으면 어땠을까? 오히려 소녀의 이야기는 나오지 않고 단순히 고아가된 소녀를 보고 한 눈에 반한다는 설정으로 영화를 제작했다면 더욱 영화에 몰입하며 관람 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소녀의 아버지가 아무 이유 없이 죽는 장면에서 스토리의 연개성이 너무 급진적으로 진행된다는 느낌을 준다. 이는 불필요한 인물을 사전에 없애고 찰리 채플린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복선의 역할이라고 생각 되지만 이 장면도 앞서 말했듯이 차라리 처음부터 아버지가 없는 고아로 나왔다면 이렇게 어처구니없는 이야기 전개는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가 죽은 후 소녀의 동생들은 어디론가 데려가지고 소녀 혼자 동생들을 버리고 도망친 것을 보면 그 시절 이러한 행동은 이해 될 수 있는 행동인가? 라는 의문점이 든다. 지금 현대사회에 빗대어 볼 때 이러한 행동의 결과는 소녀를 옹호하기 보다는 오히려 소녀를 비판했을 것이다. 지금은 세상을 살아가는데 힘이 되는 것은 가족이라는 상식이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동생들을 버리고 도망쳐 찰리 채플린과 같이 잘 살아보려고 노력하는 소녀의 모습은 너무 모순적인 느낌을 준다. 허나 이러한 느낌이 전해지지 않고 내용이 자연스럽게 진행이 된 것을 보면 그때 사회적 분위기와 지금의 사회적 분위기가 많이 달랐음을 의미한다.
또, 장면 하나하나가 많은 의미를 갖는다는 것을 모르는 관객들은 아무 생각 없이 영화를 관람하게 되어 그 장면 안에 숨겨진 의미를 찾지 못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맨 처음 시계가 나오고 양떼들이 무리지어 나오는 장면과 수많은 사람들이 이동하는 장면은 시간이라는 제약 속에 양떼와 같이 이리저리 몰려다니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러한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왜 영화 초반부에 양떼가 나오는지 그리고 양떼와 비슷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이 나오는지 전혀 이해 할 수 없다. 또, 찰리 채플린이 톱니바퀴에 끼어 같이 돌아가는 장면에서 인간의 기계화에 대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데 이것도 단순히 영화를 즐기기 위해 온 관객이라면 오히려 찰리 채플린이 다치지 않을까? 하는 걱정부터 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이는 영화를 재미로 보는 사람은 이해하지 못하는 영화 속에 내재된 감독이 전하고 싶은 의미이다. 이렇듯 영화의 의미를 알고 본다면 이 영화는 잘 만들어진 블랙코미디라고 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았다면 관객이 느끼는 기분은 단지 코미디 영화 한편을 본 듯이 기분 좋은 영화일 것이다. 또, 만약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 속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하여도 영화 내용의 공감을 사기엔 충분했다. 이는 산업화와 기계화, 자본가에 대한 내용이 아니라 극중 찰리 채플린의 지위 즉, 일반 서민들의 이야기가 나온다는 것이다. 이 장면은 찰리 채플린이 고아인 소녀를 만나 사랑에 빠져 같이 살 집을 사기위해 일자리를 구하는 장면에서 일반 서민들이 힘든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공감을 사게 된다. 여기에 소녀의 춤과 찰리 채플린의 노래가 인정되어 드디어 안정된 삶을 살 수 있었을 때, 경찰들

하고 싶은 말
좀 더 업그레이드하여 자료를 보완하여,
과제물을 꼼꼼하게 정성을 들어 작성했습니다.

위 자료 요약정리 잘되어 있으니 잘 참고하시어
학업에 나날이 발전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
구입자 분의 앞날에 항상 무궁한 발전과 행복과 행운이 깃들기를 홧팅

키워드
찰리, 채플린, 관객, 장면, 모던, 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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