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2월 7일 목요일

다문화레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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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속의 다문화' 심리학과
1. 어니스트 베델
어니스트 베델은 우리나라의 지배권을 두고 러일 전쟁이 일어난 후 '데일리 메일'의 영국인 기자로써 한국 특파원으로 파견되었다. 한국에 머물면서 취재하는 동안 그는 일본의 만행을 보게되었다. 데일리메일 본사는 베델에게 기사의 방향을 미리 정해주었지만 베델이 거부하였고 특파원으로 부임한 첫날 그는 바로 해고당하였다. 한국으로 파견된 그 해 7월, 양기탁과 함께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하였다. 고종의 밀명으로 그는 신문 발행인으로 내세워졌는데 그 이유는 일본인 검열관의 사전 검열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신문에 을사조약이 무효임을 알리고 고종의 친서를 실었으며 일본의 침략행위를 폭로하는 기사를 실었다. 이를 알게 된 일본은 영국대사관을 비롯해 영국 상해 고등법원까지 이용해 결국 베델을 법정에 세웠다. 그 결과, 베델을 상해에 호송되어 3주간 갇혀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 후에도 다시 돌아와 항일언론 활동을 계속하였다. 일본 또한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베델과 양기탁을 쫓아내기 위하여 횡령사건을 조작하는 짓도 서슴치 않았고 베델과 양기탁은 결국 대한매일신보로부터 나오게 되었다. 그 후 베델은 상해 감옥의 후유증으로 동지들에게 대한매일신보를 지켜달라는 유언을 남긴 채 38세에 심장마비로 병사하였다. 베델은 한국에서 활동 당시, '배설'이라는 이름을 받았으며 병사 후에는 서울 양화진 외국인 묘지에 묻히게 되었다. 또한 그 후 영국대사관은 한국프레스와 함께 베델의 공을 기리고자 '배델언론인장학금'을 설립하였다.
일제 강점기에는 우리나라가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민족주의를 추구했던 시기였다. 그 때에 우리나라는 반식민지 저항적 민족주의 운동의 실천을 위해 프로젝트의 하나로 민족을 창출하며 우리나라 사람들을 한 마음, 한 뜻으로 모으기에 급급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베델은 역사적 상황과 사상을 초월하였다. 대한매일신보를 설립함으로 인해 영국과 한국이라는 서로 다른 언어, 인종, 민족의 사람들끼리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며 하나의 목표를 위해 함께 하였다는 점 또한 주목해야한다. 이렇게 함께 할 수 있었던 것은 고려시대 때부터 조선시대에는 외국인이라도 이 땅에 살고 풍습을 따르면 백성으로 포용했기 때문이다. 배델 또한 이와 같은 영향으로 조선인들에게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다.
2.

하고 싶은 말
좀 더 업그레이드하여 자료를 보완하여,
과제물을 꼼꼼하게 정성을 들어 작성했습니다.

위 자료 요약정리 잘되어 있으니 잘 참고하시어
학업에 나날이 발전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
구입자 분의 앞날에 항상 무궁한 발전과 행복과 행운이 깃들기를 홧팅

키워드
베델, 영국, 일본, 양기탁, 우리나라,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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