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2월 8일 금요일

논어 레포트(에세이)

논어 레포트(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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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논어, 아시아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라면 한번쯤은 들어보았을 법한 것 이다. 하지만 나를 포함한 많은 내 또래 친구들 중, 아니 어쩌면 2017년을 살아가는 현대인들 중 진짜 '논어'가 무엇인지 아는 이는 얼마나 될까. 나 또한 이 수업을 듣기 전까지 논어가 무엇인지 자세히 알지 못하였다. 단순히 중국의 '자'자 들어가는 누군가와 관련된 오래된 책이라는 것 , 알지는 못하지만 고지식하고 답답해 보인다는 것. 이것 이외에는 논어에 대한 어떠한 개념도, 관심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공자가 누구인지는 고등학교 때 세계사시간에 배우는 것이 전부이다. 그것도 증자, 맹자, 한비자 등등 비슷비슷한 이름들을 시험만을 위해 배우기 때문에 후에 누가누구인지 기억에 남지는 않는다. 부끄러운 것일까. 논어가 무엇인지 공자가 누구인지 몰랐던 나는 무식했던 것일까. 그렇다고는 할 수 없지만 2500년 전의 기록인 논어를 통해 현대의 우리는 공감하고 지혜를 얻을 수 있으며 우리가 가장 고민하는 대인관계, 인간관계에 대한 조언을 들을 수 있기에 단순한 교양만을 위해서보다는 나 자신의 인격과 수양을 위해 읽어보는 것이 좋을 수 있다 생각한다. 그러는 나는 이를 통해 무엇을 얻게 되었고 어디에 공감을 했나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不患人之不己知, 患不知人也. 우리는 종종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 것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는다. 나는 이만큼 열심히, 이만큼 많이 하였는데 몰라주는 것,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닌데 몰라주는 것. 나또한 그러하다. 어렸을 적 중,고등학교 시절의 친구들을 만나면 가끔 불편할 때가 있다. 지금의 나는 그렇지 않은데 그 때의 철없던 내가 아닌데 지금은 많이 배우고 컸는데 그 시절의 부끄러운 내 모습만을 기억하는 친구들이 나는 판단할 때마다 마음이 불편하고 불만이었다. 하지만 그러는 나또한 그 친구를 예전의 모습으로만 판단하고 있었던 것 아닐까. 나는 그 친구의 성장하고 성숙해진 현재의 모습을 알고 있을까. 한번 이런 생각을 하기 시작하니 단순히 이 문장의 뜻을 넘어서서 더 나아가게 되었다. 왜 나는 그전의 나를 내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부정할까. 나는 나를 누구보다 잘 안다고 단언 할 수 있을까. 나는 내가 보고 싶은 나, 내가 생각하고 싶은 나만을 나 자신이라고 생각하는 것 아닐까. 과거의 친구들이 본 어리석었던 나는 내가 아니라고 믿고 싶었던 건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니 한없이 부끄러워졌다. '남이 자기를 알아주지 않음을 걱정하지 말고, 내가 남을 알지 못함을 걱정해야 한다.' 라는 문장과 내가 깨달은 바는 어쩌면 거리가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이 문장으로 인해 나는 외면하고 싶었던 어리석고 부끄러운 내 모습을 똑바로 직시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지게 되었다.
道之以政, 齊之以刑, 民免而無恥; 道之以德, 齊之以禮, 有恥且格. 이에 대해서는 반하는 의견이 있을 수 있다. 사회가 불안해 지고 다양한 범죄가 발생하는 것을 보고 관용보다는 더 강력한 형벌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지만 나는 이 문장에 크게 공감한다. 사춘기 시절 어느 친구들과 다를 바 없이 선생님들과의 마찰이 잦았다. 그럴 때마다 선생님들은 학생들을 벌주기에 바빴다. 그렇기에 우리들은 우리가 한 잘못이 무엇인지 생각하지는 않고 무조건 가혹하게 벌을 주는 선생님들을 흉보고 미워할 뿐이었다. 벌을 받지 않으려고 그 잘못된 행동을 멈추기 보다는 피해가는 꼼수만 늘 뿐이었다. 나 말고도 많은 친구들이 학창시절 이러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던 나는 새로운 담임선생님을 만나게 되면서 점차 변화하였다. 그 선생님께서는 무슨 일이 있으면 우리를 혼내기 보다는 대화로 풀어나가셨다. 그러면서 나를 포함한 친구들은 선생님이 실망하지 않도록 알아서 행실을 똑바로 하기 시작하였다. 또 언젠가는 우리의 잘못에 대해 훈육을 하시면 우리는 평소에는 화를 내지 않으시는 선생님께서 이렇게 화를 내시는 것 보면 정말 우리가 큰 잘못을 했구나 진심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경험한 바가 있기에 이 문장에 특히 공감할 수 있었다.
先行其言, 而後從之 / 古者言之不出, 恥躬之不逮 나는 욕심이 많은 사람이다. 하지만 노력과 행동이 욕심을 앞서지 못할 때 '욕심만' 많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흔히 '말만 번지르르한' 사람들을 흉보곤 하지만 우리 모두가 그런 모습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말보다는 행동이 앞서야 한다. 라는 조언은 어디에서나 들을 수 있지만 실행하기가 쉽지 않다. 항상 내일부터 다이어트를 한다고 말하지만 운동은 전혀 하지 않고 야식을 먹고 있는 내 자신, 방학이 되면 토익공부도 하고, 자격증도 따야지 하지만 티비만 보고 있는 내 자신. 스스로가 너무 한심하고 부끄럽다. 차라리 말을 말걸 생각하곤 한다. 마음속에 불씨로 있었던 이러한 부끄러운 감정들이 이 문장을 통해 다시 한번 되새겨 졌다. 이번 방학에는 꼭 다이어트를 성공해야겠다.
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 이 문장을 보고 우리는 왜 배우고 생각을 해야 하는 것일 까 고민해 보았다. 고민의 답은 위의 문장과 관련이 있었다. 배우기만 하고 책을 덮거나 그것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으면 단순히 지식이 머리에 들어온 것에서 멈추거나 심지어는 들어온 지식마저 곧 사라지고 말 것이다. 하지만 배운 것에 대해 고민해 본다면 그 배운 지식은 실천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될 것이다. 반대로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는다면 자신의 생각이란 틀에 박혀 자신만의 생각이 옳다는 태도가 생기기 쉽다. 단지 책을 읽고 교육을 받는 것만이 배우는 것이 아니다. 타인과 대화하고 소통하는 것도 배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배움이 없다면 혼자만의 생각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見賢思齊焉, 見不賢而內自省也 나 자신은 원래가 안정적임을 추구하는 성격이었다. 이러한 성격으로 인해 나는 안일하였고,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며 현실에 안주하기 때문에 발전이 없고 도전이 부족한 사람이었으나 그에 대한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고 만족하며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무언가 끌리는 일이 생길 때마다 늦었다고 생각하고 시도조차 해보지 않았다. 그러던 나는 지금 내가 멘토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그녀는 38살이라 나와 띠를 한바퀴 돌고도 한참 남을 정도로 나이차이가 있지만 나는 그녀를 언니라고 부르며 나이에 대한 위화감을 전혀 느끼지 못하며 지내고 있다. 그녀를 만난 것은 2015년 영국어학연수를 하던 때였다. 그녀는 당시 36살로 적지 않은 나이에 직장을 그만두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자신의 꿈을 위해 영국으로 왔었다. 그런 그녀와 이야기를 하면서 배운 점이 많았고 그녀는 항상 나에게 '시간에 얽매이지 말고 하고자 하는 것은 꼭 해라 그렇지 않으면 나처럼 나이 들어서 후회한다. 지금 당장은 일이년 뒤처지는 것이 두려워 도전하는 것에 겁을 먹지만 나이가 들면 그 일이년은 아무것도 아니고 오히려 그 경험들과 시도들이 득이 돼서 너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라며 조언해주었고 그 말에 걸 맞는 행동을 항상 보여주었다. 끊임없이 노력하고 누구보다 열심히 하는 그녀의 모습이 귀감이 되었고 그런 그녀를 존경하며 닮아가려고, 저런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였다. 남들과는 달라지는 것이 두려워 아무것도 하지 못하던 내가 하고자하는 꿈을 찾고 그 꿈을 좇으며 살아가는 사람으로 변화하였고 이러한 변화로 인한 현재의 내 모습이 만족스럽다.
父母之年, 不可不知也. 一則以喜, 一則以懼 사실 논어에 실려 있는 '孝'에 관한구절들은 공감이 가지 않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지나치게 장사와 제사를 강조하고, 특히 父母在, 不遠遊 . 나의 생각으로는 부모님은 어린 아이가 아니기에 옆에 붙어서 항상 보살핌을 주는 것이 효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나의 부모님께서는 항상 나에게 하고자 하는 것이 있다면 진취적으로 살고 이곳저곳 다니며 많은 것을 보고 넓게 생각하며 살았으면 좋겠다고 충고하시곤 한다. 이 말의 의미가 단순히 물리적인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지라도 전체적으로 옆에서 섬겨야 한다는 부분과 '효는 나를 희생하면서 부모님을 섬기는 것이다.' 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지는 부분이 많다. 물론 부모님이 연로하시거나 노쇠하시면 옆에서 보살펴 드리는 것이 당연하고 연로하지 않으시더라도 항상 부모님의 건강을 먼저 챙기는 것은 기본이다. 그렇지만 지나치게 나를 희생하고 모든 것을 접어가면서 부모님께만 집착하는 것은 효가 아니고 오히려 부모님께 부담을 주는 행동이 될 수 있다. 내가 더 활발하고 진취적으로 살면서 꿈을 이루어 나가며 행복해하고, 먼저 나 자신이 건강하게 사는 것이 최고의 효도라고 생각한다. 이렇듯 대체적으로 이해가 가지 못하였던 효 부분이지만 父母之年, 不可不知也. 一則以喜, 一則以懼 이 구절만큼은 읽는 순간 나의 가슴을 먹먹하게 하였다. 언제나 나의 부모님, 항상 그 모습 그대로인 것 같던 나의 부모님이 어느새 50을 바라보고 계신다. 아직은 젊으시다 마음속으로는 스스로를 위안하지만 글에 표현된 두렵다는 말처럼 한 해, 한 해 지나갈수록 많아지는 부모님의 흰머리가 마음을 너무 아프게 한다. 저 구절은 다르다고 느껴졌던 '효', '부모' 관한 많은 이야기들 중에 가장 공감이 가는 부분이었다.
비록 사장까지 밖에 되지 않는 짧은 일부뿐이었지만, 이를 통해 나와는 관련이 없고 멀다고만 생각했던 논어가 이렇게나 나의 삶과 가까울 수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 또한, 단순히 논어라는 책과 한자의 뜻만을 넘어서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고 그를 통해 더 쉽게 논어에 접근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던 수업이었다.

하고 싶은 말
좀 더 업그레이드하여 자료를 보완하여,
과제물을 꼼꼼하게 정성을 들어 작성했습니다.

위 자료 요약정리 잘되어 있으니 잘 참고하시어
학업에 나날이 발전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
구입자 분의 앞날에 항상 무궁한 발전과 행복과 행운이 깃들기를 홧팅

키워드
하지, 생각, 우리, 논어, 친구, 부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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